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뱅상 콤파니 (문단 편집) == 여담 == * 아내와는 맨체스터에서 만났는데, '''평생 맨시티의 팬으로 살아온''' 맨체스터 토박이라고 한다. 정작 [[장인어른|장인]]은 맨시티의 최대 라이벌팀인 맨유의 팬이라는게 함정. 아무튼 슬하에 딸과 아들을 하나씩 두고 있다. * 유망주 시절부터 각종 축구 게임에서 성능이 좋기로 유명했다. [[풋볼 매니저]]에서 특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으며 시간이 지나 맨시티로 이적한 이후 버전에서도 콩파니의 체감 성능은 상당히 절륜하다. 특히나 유사시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세워도 제몫을 충분히 해낼 정도로 득점력이 좋다. [[피파 온라인]] 1에서도 성장하면 모든 능력치가 99가 되는 사기 선수로 명성이 높았는데, 이후 패치로 너프되긴 했지만 그래도 쓸만했을 정도다. 이후 [[파블로 사발레타]]가 올99의 명성을 이어갔다. * 굉장히 학구적이고 지적인 인물로 현지에서도 평가받고 있으며, 실제로 선수 생활을 하는 와중에 짬짬이 공부하면서 맨체스터 비즈니스 스쿨의 MBA 과정을 졸업하였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동료 선수들에게 "운동선수는 운동만이 전부가 아니라 스스로 공부를 하며 지식을 가져야한다"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 이후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종 사업에 손을 벌리기도 했는데, 나름 사업 수완도 좋은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자동차 회사인 '엘리트 리무진 서비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벨기에 3부 리그 팀인 'BX 브뤼셀'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프로덕션 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하고 벨기에 내에 스포츠바도 소유했었지만, 낮은 수익으로 스포츠바 사업은 접었다고 한다. * 또한 해외 리그에서의 경험을 통해 다개국어자가 되었는데, 벨기에의 양대 공용어인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모두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영어와 독일어도 구사할 수 있다. 특히 영어 실력이 매우 출중한데, 보통 사람이 다른 언어를 배우게 되면 본인의 모어의 영향이 짙게 남는 특유의 억양을 가지는 경우가 흔하지만[* 아시아인이 영어에서 r과 l의 발음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던가, 일본인이 영어를 학습할 때 æ 발음이 잘 되지 않아 고전한다던가, 한국인이 일본어를 배울 때 つ(tsu)를 원어와 동일하게 발음하기 매우 어려워 한다던가, 모어가 스페인어인 사람들이 영어를 배울 때 스페인어의 악센트를 강하게 넣어서 발음한다던가 등등등.] 콤파니는 이러한 억양조차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영어 실력이 좋다. 무엇보다도 영국 현지인들이 말하는 것 그 이상으로 다양하고 폭넓은 어휘 구사력을 보여준다. 벨기에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던 시절이나[* 벨기에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공존하는데 출신 지역에 따라 어느 한 언어만 할 줄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원할한 소통을 위해 국가대표팀에서도 선수들이나 스태프들이 외국어인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편이다.] 안더를레흐트, 그리고 번리 감독으로 활동하면서도 유창한 영어 회화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말을 잘 하는 달변가 스타일이고 그래서인지 영국 현지 팬들도 콤파니가 인터뷰에서 말하는 걸 들으면 대학 강의를 듣는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 이러한 학구적인 면모가 축구에서도 어느정도 영향을 주는지 콤파니는 감독 경력 초반부터 전술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있는데, 이러다보니 장래에 콤파니가 감독으로서 맨시티에 돌아와주길 바라는 팬들의 의견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물론 아직 빅 리그의 1부 리그에서 검증되지 않은 젊은 감독이고 현재는 [[펩 과르디올라]]의 영향력이 탄탄해 지금 당장은 시기상조긴 하나, 콤파니가 감독 경험을 더 쌓으며 전술적 역량도 더욱 입증하고 언젠가 펩이 시티를 떠나는 날이 오게 된다면 콤파니를 후임으로 밀어줘도 좋지 않겠냐는 것. 전술적 역량과 별개로 시티의 전설이라는 점과 콤파니 본인의 관리 능력 때문에 선수단 장악 능력 하나는 걱정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라는 점도 있다. 맨시티와 번리의 FA컵 매치업이 성사되자 펩이 콤파니에게 차세대 맨시티 감독감이라고 약간의 립서비스가 들어간 고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 과르디올라의 지도를 받은 여러 선수들이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콤파니느 펩과 함께했던 3시즌 동안 축구를 완전히 새롭게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만치니-펠레그리니를 거치면서 수비수로서 그전까지는 터프하게 수비하는 것을 주로 생각했지만, 펩의 지도를 받으면서 펩의 포지셔닝 플레이가 왜 필요하고 승리로 가는 데 효과적인 방법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콤파니는 펩이 부임한 첫 시즌인 2016-17 시즌 초반에 부상으로 팀 훈련에 참가하지 못하는 시즌 첫 3~4달간 매일 회복 세션을 뒤로 미루고 자처해서 팀 훈련을 참관하면서 펩이 지도하는 방식을 유심히 관찰했고, 이것이 훗날 자신이 지도자가 되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 2013-14 시즌까지 콤파니가 퇴장당한 리그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전승했다. 다만 컵대회는 예외로, [[나니(축구선수)|나니]]를 향한 양발 태클로인해 퇴장당한 후 컵대회에서 맨시티가 패배한 적이 있다. * 사적으로 서포팅하는 클럽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알려져 있다. * [[마음의 소리]] 902화에서 행인으로 출연했다.[[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20853&no=906&weekday=fri|#]] * 한때 [[풀럼 FC|풀럼]]을 상대할때 양쯔강 용승천슛 뺨치는 멋진 자책골을 보여주신 적이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kMpUUAvk5nI|#]] 오히려 [[파피스 시세|시세]]의 UFO슛 같기도 하다. * 맨시티 선수와 현지 팬들에게서는 이름인 뱅상(Vincent)에서 따온 '비니'(Vinnie)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파일:콤파니_동상.jpg]] * 2021년 8월 28일, [[다비드 실바]]와 함께 콤파니의 동상이 공개됐다. 위치는 그가 10년 동안 몸 담은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인 [[에티하드 스타디움]]. * 유스 시절에 [[설기현]]과 잠깐 같이 뛰 적이 있다. * 벨기에의 [[흑인]] 선수 대부분이 그렇듯이, 부계가 [[콩고민주공화국]](舊 자이르)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국제 NGO인 'SOS 어린이 재단'의 공식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콩고민주공화국의 아이들을 돕고 있다. 한편 콩고민주공화국계 벨기에인이라 이름도 [[콩고민주공화국]]식 작명법을 가지고 있다. 콩고식 작명법은 이름-성-후성으로 구성되는데, 이를 대입하면 '뱅상 장'이 이름, '음푸아'가 성, '콩파니'가 후성이다. 그러므로 사실 본래 쓰이는 주 성은 '음푸아'고, 일반적인 케이스대로 불렸다면 '뱅상 음푸아'라고 불렸거나, [[알베르 삼비 로콩가]], [[랑달 콜로 무아니]] 등 다른 콩고계 선수들처럼 표기했다면 '뱅상 음푸아 콩파니'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노릇. * 아버지 피에르는 구 벨기에령 콩고 (현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으로 정치적 난민으로 벨기에로 이주해 기계공학자 및 발명가로 일하다가 2018년에 간소렌(Ganshoren) 시의 시장으로 당선되어서 벨기에 역사상 최초의 흑인 시장이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 조슬린은 콤파니에 따르면 '공산주의자에 가까운 사회주의자'로 노동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콤파니에 따르면 어머니는 자녀들을 불러다 벨기에의 여러 노동 통계자료를 보여주면서 [[인종차별|흑인으로서의 삶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자녀들을 다부지게 키우려고 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